2011년 9월 12일 월요일

조용기 -정귀선 빠리의 나비부인

아래 글 http://jesusdelusion.blogspot.com/2007/09/blog-post.html 에서 퍼왔다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여러가지 것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래, 글 전문

아래과 같이 일요신문에도 기사화되었으므로 그 진위여부는 문제가 안될 것이다.
유명목사와 사랑을 파리의 프리마돈나 '정귀선'그녀의 자전적소설 <빠리의 나비부인>이 대한민국 대표 주간신문인 2004년 10월 14일자 <일요신문>에 대대적인 기사화가 되었다.
조 다윗에게 농락당한 후 내팽게 처진 빠리의 나비부인의 저자인 정귀선은? 아래는 유럽교민신문 기사의 캡처사진이다. 2006년 11원 06일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이블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빠리의 나비부인"을 강력 추천한다.
그렇다면 이제 궁금한 것은 그 내용일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래는 하기 싸이트에서 퍼온 글이다.http://www.sarangbang.or.kr/bbs/view.php?board=freeboard&id=2987&page=1먼저 중복되는 부분은 삭제하나, 서두에 나오는 조용기 매독에 걸린 사연의 진위여부의 확인은 미루기로 하고,빠리의 나비부인의 책은 어떤 내용을 싣고 있을까? 이하 펌글 내용
=====================================================================================================제목 너무나 우스운 이야기

글 쓴이 박영진 (vic1290) 번호 14196 날짜 2005-04-02 19:49:13 조회수 4073 추천 8 창녀「프랑스와즈 크와레」와 사랑의 흔적옮은조용기, 「성병사건」그 전모-- 처가식구들까지 알아버린 성병사건은 이렇다. -->> 프랑스 창녀 프랑스와즈 크와레양집에서 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알몸이 된체…파리부흥집회가 끝날때까지 그렇고 그런 행위를 계속하였다고 한다.「한강에 배띄운 자욱이 남을 수 있는가!…」그런데 묘하게 일이 우습게 되려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두남녀의 사랑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되었기에 그랬는지 그만 그들의 달콤했던 사랑의 흔적이 남아버렸던 것이다. 그는 몇일간 프랑스와즈 크와레양과 진탕으로 놀아난 뒤 토요일날 귀국하여 예배시간에 또다시 양의 탈을 뒤집어 쓰고 「여러분!! 모든 사고의 에너지를 성공이라는 목표에 총 집중하십시요. 성공적인 꿈과 신념을 가지십시요. 신념에는 항상 마력이 따르게 됩니다. 폭발적인 마력의 파장이 일때까지 …」라고 하며 기관총 쏘듯 특유의 빠른말로 설교를 했고 신자들은 비틀즈의 쇼를 보고 감격하듯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연발했다고 한다.>> 조용기씨의 설교는 언제나 「재탕 삼탕, 삶, 패배, 무결단성, 실패, 기회, 꿈, 경쟁사회, 신념, 승리, 결단,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등의 기발한 착상으로 언제나 신자들을 그럴싸하고 간지럽게 흥분시켜 놓고 최면술적인 설교를 끝내버린다. 그러면 그 교인들은 그의 설교 아닌 처세술, 신념술, 적극적인 사교술인데도 그것이 설교말씀으로 착각 믿어버린다.어떻든 그날도 조용기씨는 윤이 번쩍번쩍 나는 이마, 호리호리한 몸매, 최면술을 불러 일으키는 특유의 스피취로 설교를 한것이다. 그리고 그는 몇일간 그의 처 김성혜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이번에는 미주로 훌쩍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조용기씨가 미주로 집회차 훌쩍 떠난후 김성혜씨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갑자기 가렵기 시작한 것이다. 김성혜는 그것을 가려움정도로 생각했었는지?… 그러나 차츰 따금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자 최근, 조용기씨 수상쩍은 행동이 상기되기도 해 설마 설마 하면서 그녀는 병원문을 노크했다.>> 진찰을 하고난 의사는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더듬거리면서 「부인 매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라는 청척벼락 같은 선고를 내려버린다. 「매독… 매독이라니!…」>> 김성혜는 기절할 듯 놀랐을 것이다.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면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시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을 것이다. 그녀는 그때 성경말씀이고 ㅈ ㅣ랄이고 …하면서 황급히 병원문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아찔한 현기증 때문에 핸드백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맥없이 주저앉았을 것이다.「성병」성경에는 유출병이라고 레위기 15장에 기록되어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추잡한 병이 바로 유출병이다. 그런데 「하늘의 저주를 받은 그런○이 그토록 많은 술수와 위선으로써 신자들을 속이고 하나님처럼 추앙받다니, 그런 놈이 외국에 나가서는 낮에는 쇼하듯 설교를 하고 밤이 늦으면 색마가 되어 아무 여자든지 걸리기만 하면 살을 섞다가 국제바람둥이 �스공자가 된 증거를 드러내다니…」>>김성혜의 눈이 불통이 되어 튀었다. 「내가 저런○을, 국제매독을 옮겨준 ○을 믿고 세상을 살다니」그녀는 앞뒤 가릴 여유조차 없었는지 당장 국제전화로 놈을 불러냈다고 한다.「야 이 개○끼야! 네가 목사냐? 무당놈이냐? 야 니가 부흥회한다고? 이제 광대노릇 그만할 수 없어? 너 이 ○끼, 개○○ 부흥회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오늘 당장 돌아와! 안오면 당장 이혼이야. 이 색마야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야, 한두번도 아니고 에이 더러운 것…」김성혜의 실성한 듯한 전화에 조용기는 「“여보! 왜 그래? 응?」하면서 감을 못잡았고, 「야 이개같은 추잡한 ○아 빨리와서 내병 고쳐주지 못해? 어느 년하고 붙어 먹었기에 나까지 매독을 옮겨? 당장 귀국하지 않으면 다 불어버릴 거야 이 추잡한 자식!…」위와같이 계속된 김성혜의 호통에 비로소 알아차린 듯 「이크 큰일났구나!…」하며 집회를 하는둥 마는둥 귀국했다고 한다.「이 번엔 창녀란 말이야? 이 더러운 자식! 너죽고 나죽자…」김성혜는 발작하듯 독사같은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마구 조용기를 흔들어대면서 끝내는 엉엉 울기시작 했다고 한다. 감정이 일시에 폭발한 마누라를 설득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하고 그는 초상집의 상주같이 통곡하고 있는 김성혜를 가까스로 뿌리치고 집에서 멀찌감찌 떨어진 쉐라톤워기힐호텔로 들어가 투숙하면서 「어떻게 마누라를 설득시킬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전화로 신모목사를 불러 그동안의 되어진 일을 대충 얘기하면서 가정문제의 상담역과 중재역을 부탁하기에 이른다. 신목사는 한국기독교계의 중진부흥사로 조용기와는 아주 친숙한 사이였다.「창녀였군」조용기의 변명을 다 듣고난 신목사는 충격과 실망의 표정을 감추면서 말한다.「…」그는 땅이 꺼지는 듯한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떡인다. 가장 거룩한체 성자흉내만 내던 그 혀끝으로 창녀의 ○를 핥아주면서 타락의 즐거움을 맛보던 그 신음소리를 내면서 내딩굴던 그녀에게 방망이를 입속으로 밀어넣던 그.후회해도 소용없고 울어봐도 소용없는 치명상이 될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아니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결국은「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라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질줄로 믿었을 것이요, 우리아의 아내를 강탈한 다윗의 간음행위를 밝혀내신 하나님을 두려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앙인이 아닌 독사의 자식 음행의 자식인 음행공자 간음공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추한 행위가 탄로날 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초현대식으로 간음행위를 했을 것이다.>>어떻든 그는 호텔에서 신목사와 머리를 맞대고 김성혜를 달랠 방법을 간구한다. 그러나 그가 돌파구를 찾는 동안 김성혜를 통해서 그녀의 처가식구들도 알게 됐고 김성혜의 입을 통해 교회간부 몇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어 버린다. 교회간부들은 큰 충격을 받았으나 우선 외부인의 눈을 가리기 위해 쉬쉬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그후 그는 신목사의 중계덕분에 김성혜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김성혜를 미국의 모대학초청으로 특별세미나 참석겸 수학하러 간다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건너보낸다. 그리고 그는 교회 성장세미나 관계로 미국에 간걸로 광고하고 위장 출국한 것이다.미국에는 그의 처남 김모목사가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그들은 극비리에 성병을 치료했고, 성병을 치료하는 동안에도 이들 부부는 자주 말다툼을 하였다고 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김목사는 자기의 매형이 괘씸하게 생각되었다. 화가 치밀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인가? 그는 결국 한국에 있는 최자실여사에게 매형과 누나가 똑같이 성병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중이라고 고해 바쳤고 최자실목사는 최세민장로에게 알렸다. 그러나 최자실목사와 최세민장로는 이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는고로 그아들 김목사를 설득 입을 막으려 했다. 이렇게 하여 「성병사건」으로 처가 집 전체가 초상집격이 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순복음 여의도교회는 원래 처가의 덕분에 개척 성장한 교회였기 때문에 처가의 입김이 거세다. 그러나 그시절 배은망덕하게도 개구리 올챙이시절 모른다는 격으로 처갓집식구들을 견제하려고 자기집식구들을 교회 요직에 앉혔다. 겉으로는 서로 평화로 공론을 부르짖으나 속으로는 서로의 집안을 헐뜯기가 일수였다. 그들이 얼마나 원수지간이냐 하면 본보에서 조용기목사에게 「김성수목사와 최자실목사를 쳐라, 자료를 뽑아 주겠다. 우리 목사는 아무 잘못이 없다. 섹스 스캔들은 벌써 10년전에 있었던 일이다…」며 그의 처가의 비행까지 알려줄 정도이니 말이다.양쪽 집안이 서로 첨예한 대립을 하게된 것은 조가 목회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그 후계자 자리를 어느집안에서 차지하느냐의 문제 때문이었다. 자 교회가 조씨의 부동산인가 누구 누구에게 상속해주게. 이건 절대로 신앙인의 짓이 아니다. 어떻든 조씨는 위와같이 엄청난 매독스캔달을 일으켰으면서도 간신히 그의 뒤를 추적하던 누군가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어찌 감춘 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으랴. 다음은 조씨의 서독섹스 스캔들을 추적해보자. 「그가 양을 돌봐야 할 몸으로 제몸만 돌보고… 젖이나 짜먹고 양털을 깍아 옷을 해 입으며 살찐놈을 잡아먹으면서… 양을 노략질하기 때문에…」먼저 당시 서독에 있었던 김모목사의 증언을 먼저 들어본후 그의 스캔들을 �자. 「마태복음 7장 15절이하의 말씀처럼 그는 거짓예언자요…그는 양의 탈을 쓰고 교인들을 속이고 노략질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소… 나는 그의 행위를 보고 그를 압니다.」그러니까 1979년도라고 한다. 이 때가 바로 조씨가 한참 깃발을 날릴 때이다. <김향남기자>출처: 가주신문 1988년 3월16일자, 3월10일 발행 dudnf(tlsdnf) 2005-04-04 18:39:17 가주신문은 어디신문이고, 김향남기자는 또 누구요? 검색해봐도 없데?? 그냥 비아냥거리느라 써놓은건지... 그렇다면 당신 참으로 어리석은 짓했오. 쯧쯧..지나(vic1290) 2005-04-04 20:27:49 가주신문은 LOS ANGELES에 있는 한인신문입니다. 그 당시에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더군요. 당신이 진실을 알고 싶다면 직접 알아보십시오..저는 이 기사원본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해서 올린 것뿐입니다..지나(vic1290) 2005-04-05 08:26:31 저도 기자지만 김향남기자님처럼 이런 진실된 기사를 자신있게 쓸수 있다는 현실이 한 편 부럽군요..한국에도 당신처럼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할 수 있는 언론인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메가톤급 폭로 1탄 "파리의 나비부인"◈-흥미진진파리의 나비부인(연재 1회)정X선지음도서출판 띠앗목사님과의 얘기치 않은 사랑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유럽에 오시는데, 그 목사님을 일부러 빠리로 모셔서 사장님의 사업인 TGV 건에 도움을 청하고자 한다며 아주 중요한 저녁 초대라고 하셨다. 7시 정각에 샹제리제 부근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호텔의 살롱 쪽을 두리번거리면서 찾고 있을 때, 오늘 만나기로 한 목사님으로 보이는 분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듯 앉아 계셨다. 그리로 가서 "목사님" 하고 부르면서 인사를 했다.(125 페이지)오늘 저녁 초대에 사장님께서 초대해준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면서, 작년에 목사님이 빠리에 오셔서 설교할 때 특송을 부른 사람이라고 인사했다. 목사님은 그 때를 기억한다며 이리로 앉으라고 하셨다. 또 강 사장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항상 잘 늦는다고 하시곤 원래 여자들이 잘 늦어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셨다며 웃으면서 말씀하셨다.미인으로 알려진 사장님은 무척이나 목사님에게 잘 하려고 노력했다. 그 분들은 서로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이인 듯 했다. 목사님은 사장님과 10년 이상 된 아주 절친한 친구로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옆에 있는 나를 보고는 아주 귀하게 생긴 분이라고 했다. 마음이 넓고 깊으며 아름다운 분이라고 칭찬하시면서 온유하게 생긴 이런 사람을 애인으로 한 번 삼아보고 싶다고 웃으면서 나를 한껏 추겨 주셨다. 순간, 사장님의 얼굴빛이 변하여 미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계속해서 목사님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내 이름을 물어보시더니 이름이 외모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하시며, 내가 원하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하셨다. 사장님과의 대화 속에서 알게 된 어려웠던 나의 인생에 새 이름으로 바뀌어질 수가 있다고 하셨다.그러자 목사님은 자신의 기도 리스트에 내 이름도 포함하겠다고 하셨다. 도 자기는 노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외국으로 많이 돌아다니면서 외로울 때면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노래를 해달라고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도 부탁할 수 있냐고 물으셨다.(127페이지)그러는 동안 사장님께서는 여러 번 사진을 찍으셨고, 우리는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다시 그 분을 호텔로 모셔드리고 사장님과 나는 헤어지기 전에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장님께서는 그 목사님은 서울에 들어가면 감히 만나볼 수도 없이 아주 대단한 분인데, 오늘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을 보니 대단히 즐거우셨던 모양이라고 말씀하셨다.내가 떠나올 때의 74년도에는 그렇게 큰 교회가 있었던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그 때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고 그 후에 교회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유명하고 대단한 것에 대해서 나는 별로 관심을 갖고 싶지 않았고, 그저 힘든 내 생활을 스스로 꾸려 가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다. 어쨋든 그렇게 대단한 분에게 높이 평가받고 관심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128페이지)집에 돌아오니 거의 밤 11시가 되었다. 아직 잠들지 않은 아들과 잠깐 대화를 나무면서 잘 준비를 하기 위해 목욕탕에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목사님의 목소리였다.* 이상 주요부분을 발췌했는데 위를 보면 목사란 종자가 여인의 외로운 형편을 알고 처음부터 음흉한 마음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강사장이란 여자분은 불란서와의 고속철 문제로 다툴 때 언론에 오르내렸던 Miss Korea 출신으로 유명한 그사람인가?

◈희대의 사깃꾼 조용기 불륜 연재 2회-절찬 연재중◈파리의 나비부인장안의 화제: 불륜6걸(유명목사들) 아시나요?김홍도-곽선희-석원태-이복렬-조용기-장효희파리의 나비부인(연재 2회)정X선지음도서출판 띠앗목사님과의 얘기치 않은 사랑좀 전에 레스토랑에서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단지 사장님이 너무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목사의 입장에서 좀 불편해서 거리를 갖고 싶어서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랬는데 금방 헤어져서, 그것도 처음 만난 나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한 것에 놀라면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목사님은 잘 들어갔냐고 안부를 묻고는, 오늘 저녁에 참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서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했다. 그리곤 영어로 'I love you'라고 말씀하셨다.(128페이지)나는 당황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잘 보아주셔서 감사하다며 나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었다고 대답했다. 잊지 않고 전화를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 드렸더니 목사님께서 자주 전화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웃으면서 얼마든지 생각나실 때 전화를 해도 된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조금 이상한 예감이 들었으나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쨌든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님께서 나를 한 번 만나보고 찬사를 보낼 정도로 좋게 생각해주시는 것이 기쁘고 행복했다. 그저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피곤에 지쳐 잠자리에 들었다.이튿날 아주 이른 새벽, 전화 벨 소리에 잠이 깼다. 6시가 될까 말까 한 시각이었다.목사님이셨다. 그 분은 나를 생각하느라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고 하셨다. 자기가 어쩌다 빠리에 와서 나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나에게 빠져드는지 모르겠다며 괴롭고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셨다. 밤새 기도하면서 나에게 줄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고 하면서 '혜진'과 '귀선' 두 이름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말씀하셨다.목사님께서 알아서 골라 달라고 했더니 둘 중에 하나를 굳이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귀선'이라는 이름을 골랐다.목사님은 그 이름을 종이에 직접 써서 사장님에게 전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곤 오늘 독일로 떠나신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는 오늘 공항에서, 떠나는 길에 나를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온통 내 생각으로 꽉 차있다고 하시면서 자주 전화를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그 후부터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나는 좋다, 나쁘다고 할 여유도 없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목사님이 이끄는 그 사랑 속으로 급속히 빠져 들어가게 된 것이다.민이 아빠가 죽은 지 11년째 접어든 때였다. 다시는 어떤 사람과도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나는 맹세했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그가 남기고 간 아이들을 보살펴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이 이끄는 사랑이라는 수렁으로 생각할 여지도 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나갔더니 사장님을 비롯, 빠리 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간부 집사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목사님은 남의 눈을 피해가면서 나에게 사랑의 표정을 전해주셨고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속삭이셨다.그 분이 떠나고 나는 사장님과 함께 공항에 남게 되었다. 차를 마시는데 사장님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셨는지 목사님이 너를 아주 잘 보신 것 같다며 부러워하는 듯 하면서도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분은 한국에 가면 만나기 힘든 분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 나는 좀 곤란하고 어색한 마음으로 뭐라고 답변할 수는 없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뭔지 모를 기쁨이 일고 있었다.그날 저녁, 목사님은 잊지 않고 전화를 주셨고 우리는 길게 대화를 이어갔다. 목사님과의 대화는 지루하지 않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어져, 꼭 아주 오래 전부터 만난 사이인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벌써 목사님께서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듯했다. 이제는 죽은 사람은 잊어버리고 자기를 사랑하면서 새 출발을 하라고 하셨다. 그 동안 너무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걸 다 아신다면서 나를 영원히 사람하며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달콤하게 속삭여 주셨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는 자꾸만 꿈을 꾸는 듯 했다.매일 아침, 저녁으로 몇 번이고 오는 전화와 긴 대화를 나누는 내 모습에 익숙하지 않았던 민이는 몹시 궁금해하면서 누구길래 전화로 무슨 말을 그렇게 길게 하느냐고 물었다.(연재는 앞으로 3회로 이어 집니다. 기대 하십시오.)* 위를 보면 희대의 사기꾼이 아예 처음부터 작심을 하고 부담 없이 즐기려고 해당하는 여자를 꼬인 것 같다.* 1회분은 다음 글들 아래에 있습니다.* 조용기란 종자! 세 아들들 군대 하나 안 보내고도 국군에 대한 축복기도는 열렬히 잘하고... 헌금 수천억 착복하여 음란 스포츠신문 만들고... 사모 아들 사돈을 총장 이사 사장으로 앉히는 변칙세습의 귀재...파리의 나비부인(연재 3회)정X선지음도서출판 띠앗목사님과의 얘기치 않은 사랑목사님은 매일같이 전화로 하루 일과를 이야기해 주셨고 다음 일정을 알려주기도 하셨다. 한참 대화를 하다가 내 모습이 자꾸만 흐려진다며 빨리 보고 싶다고 하셨다. 어디를 가든지 온통 나의 생각으로 꽉 차있다며, 스위스에서 마지막 집회가 있는데, 그 곳으로 오라고 권했다. 나의 모든 것을 더 많이 알고 싶다고 하셨다.(132페이지)그때 마침 민이는 한국 교회 청년회에서 주관하는 수양회에 며칠 가 있었고, 오페라는 쉬는 날이라 그곳에 가겠다고 대답했다.가장 빨리 스위스로 가는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아침 일찍 첫TGV를 타고 쥬네브에 도착, 거기에서 차를 렌트하기로 했다.갑자기 애인이 생긴 나는 입고 나설 옷들이 변변치 않았다. 다만 목사님의 애인이니 그저 검소하게 차려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있는 옷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속옷은 조금 야한 차림으로 입고, 하룻밤만을 보낼 수 있는 간단한 짐을 챙겼다. 그런 다음 그 분이 머무는 큰 호텔의 방을 예약한 다음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집회는 2시 반에 시작해 4시 반경에 끝날 예정이었다. 나는 예약한 방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목사님을 기다렸다.집회가 끝나는 시간을 계산해서 목사님 방으로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받은 목사님은 부지런히 내 방으로 건너 오셨고, 나는 그 분의 품 안에 안겼다. 기다렸던 만남에 우리는 너무 행복했고, 꿈같은 사랑을 나눴다. (133 페이지) (… 집회 끝나자 마자 대낮부터….) 목사님은 당시 유행하고 있던 건강 팔찌를 선물로 주시고 호텔비까지 두둑하게 챙겨주셨다. 저녁 시간에는 일행들과 간단히 저녁 파티에 초대받으셨다고 하면서 혼자 저녁을 먹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며 내 방을 떠났다. 목사님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나 역시 몸은 피곤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목사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잠시 후, 목사님은 파티에 대충 참석하고 부지런히 돌아오신 것 같았다. 그 분은 자신이 어쩌다 나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다. 많은 여성들이 자기의 손 한 번 만져 보고 싶어서 야단인데 나를 이렇게 처음부터 사랑하게 되었으니 자신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나도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버리지 말라며, 이제부터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도 하셨다. 나는 이렇게 단 한 번이라도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고 행복하니 부담 갖지 말고 가볍게 생각하시라고 대답했다.우리는 오랫동안 달콤한 사랑을 나눴고, 목사님은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른 새벽, 목사님을 깨워 그 분의 방으로 보내고 아직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각에 조용히 그 곳을 빠져 나왔다.이렇게 살다가 죽는다고 생각했었던 지난날 나의 인생이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오늘 나를 긍휼히 여겨 이런 시간, 이런 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목사님과의 만남이 단 한 번의 불장난으로 끝난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거의 오후 1시가 되었을 때 강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이것으로 오늘분 연재는 끝납니다....)* 김성혜총장은... 안�시다...* 저자는 서울음대와 동대학원을 나오고 빠리 오페라단 최초의 한국인 소프라노 가수였다.전격공개에스겔 34:10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 파리의 나비부인(연재 4회)정X선지음도서출판 띠앗목사님과의 얘기치 않은 사랑계속 전화를 했었는데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며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우리의 관계를 말하지 말라고, 특히 사장님이 모르게 하라던 목사님의 당부가 생각나 적당히 둘러댔다. 목사님이 3시 비행기로 빠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기로 예정이 되었다. 사장님과 함께 마중 나가서 집회장소인 프랑스 북쪽 지방까지 목사님을 모시고 갈 계획이었다. 또 다른 빠리 교회의 신도들도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목사님은 마중 나온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보자마자 사랑의 눈길을 보내주시고 수행한 장로님과 함께 사장님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나도 뒤쪽의 목사님 옆자리에 올랐는데, 조심스럽게 내미는 그 분의 손을 잡고 집회 장소로 향했다. 나는 그저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사흘 간의 집회 중 첫 날에는 오페라에 결근을 하고 사장님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빠리로 돌아왔다. 집회가 끝나는 날 다시 목사님을 모시러 가기로 약속했다.목사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느꼈는지 사장님은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나를 아끼는 마음과 시기심이 동시에 이는 듯했으나, 자존심 때문인지 나에게 직접 물어보려 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계속해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사장님은 자제하려고 몹시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시기하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돌아오는 길에 사장님은 목사님을 모시러 갈 때는 내가 필요가 없으니 혼자서 가겠다고 했다.그러나 목사님은 나와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화를 했다. 내가 떠나고 나니 허전하고 쓸쓸하다고 하면서 나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셨다. 집회 마지막 날 다시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분에게 '사장님이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으니 직접 전화를 하시라'고 전했다. 목사님의 전화를 받은 사장님은 하는 수없이 함께 가자고 전화를 걸어왔다.목사님을 다시 빠리에 모시고 와서 우리는 사장님의 점심식사에 초대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과 목사님은 골프를 좀 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만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일어섰다. 더 있다 가라고 붙잡는 사장님께 나는 약속이 있다고 하면서 나왔다. 목사님도 피곤하니 호텔에 가서 쉬겠다고 해 장로님과 목사님을 호텔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도 곧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은 서울로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마음에 담고 떠나길 원하셨다. 나는 얼마 후 호텔로 달려가 목사님을 집으로 모시고 왔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나는 목사님을 모시고 라데팡스의 소피텔 호텔까지 가서 방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분이 사장님과 저녁 약속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후 목사님이 돌아오셔서 나와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또한 자기가 사용하던 칫솔도 나에게 남기고 가겠다고 했다. 그 분은 그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나에게 주고 싶어했다.그리고 한 달후 러시아(당시는 소련) 집회가 끝나는 길에 빠리에 들러 나를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면서 한 달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이튼날 떨어지기 싫은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그 분은 모든 일정을 끝나고 서울에 도착하자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 "너를 빠리에 두고 혼자 떠나야만 되는 것이 너무 슬퍼서 울면서 돌아왔다" "내가 어쩌다 너에게 이렇게 빠져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괴로워하셨다. 나는 "목사님께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위로해 주었다.목사님은 매일 전화를 하셨다. 어떤 대는 하루 두 번씩 전화를 할 때도 있었다.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할거라는 자기의 모든 일과를 전해주었다. 그 분은 나를 자신의 영의 아내로 생각하고 있으니 나도 자기를 남편으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일이 손에 잘 안 잡히고 온통 내 생각으로 차 있어 하루종일 멍해질 때도 있다고 했다. 비서들이 목사님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고도 하셨다.-이하 부분 앞으로 계속 연재-조용기씨 불륜

■현장사진 입수 전격공개빠리특파원◈희대의 사깃꾼 조용기 불륜 연재 5회-절찬 연재중◈파리의 나비부인"나는 목사님을 모시고 라데팡스의 소피텔 호텔까지 가서 방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분이 사장님과 저녁 약속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후 목사님이 돌아오셔서 나와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또한 자기가 사용하던 칫솔도 나에게 남기고 가겠다고 했다. 그 분은 그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나에게 주고 싶어했다."(137페이지)시편 1 :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파리의 나비부인(연재 5회)정X선지음도서출판 띠앗목사님과의 얘기치 않은 사랑나는 그분에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 마음 편히 가지고 힘을 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그분은 나에게 불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하고, 공식적으로 프랑스 선교를 선포했다고도 했다. 그것을 그 분이 발행하고 있는 신앙잡지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빠리에서의 선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다.또한 나에게는 옛 것을 전부 정리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했다. 건강검진도 받고, 집도 깨끗이 새롭게 단장하라고 권했다. 헌 옷도 다 버리고 새 옷으로 바꾸라고 했다. 침대도 모두 다 새것으로 시작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 분의 말대로, 우선 아파트를 다시 깨끗하게 단장하기로 계획을 세웠다.목사님은 가끔씩 나에게 전화로 '비목'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 분은 그 노래를 좋아하셨다. 가사가 나를 말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성경도 모르고 기도할 줄도 모른다고 했을 때 그 분은 내가 인도함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었다.그 분은 습관적으로 매일 나를 불렀고, 나는 매일 그 분의 전화를 기다렸다. 우리는 서로를 높이 인정하고, 존경해 주었으며, 믿어 주었는데 그럴수록 사랑의 마음은 더욱 더 타올랐다.어느 날 그 분은 사장님이 서울의 자기 사무실로 찾아와서 내 흉을 보고 갔다고 했다. 시기심에 불타는 마음을 이처럼 유치한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목사님은 불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또 6월에 나를 보러 빠리로 올 때는 나에 대한 사랑의 약속으로 반지를 끼워주시겠다고 미리 이야기도 했다.어느덧 6월이 다가왔고 목사님은 러시아에서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러시아는 위험해서 밖에 잘 돌아다닐 수 없어서 계속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내 생각만 한다고 했다. "내가 너를 떳떳하게 내놓고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서 네가 불쌍한 마음에 많이 울었다"고 말해 내 마음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나마 큰사랑을 받고 있어 행복하니 그런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해주었다.어느 날 저녁 그는 내가 너무 많이 보고 싶으니 마지막 날에 생삐트흐부그르로 와 함께 구경을 하고 바리로 돌아오자고 제안했다.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 모두들 관광하는데 자기는 나늘 생각하면서 쓸쓸히 있다고 전화를 했다. 오페라에 말도 없이 2, 3일 동안이나 결근을 하고 그 멀리까지 가려고 하니 너무 복잡한 것 같아 못 가겠다고 했지만 그 분은 자꾸만 오기를 원하셨다. 자기가 나의 남편이니 남편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며 기분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다.그러나 거기까지 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그 대신 목사님께서 빠리에 오시면 오페라 카르멘을 구경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웃으면서 전화를 끊는 그 분은 많이 고독해 보였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도저히 내 힘으로는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정명훈 지휘자님 사무실에 찾아가서 목사님이 빠리를 지나는 길에 오페라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지휘자님은 자신도 목사님과 안면이 있다며 쾌히 승낙하셨다. 목사님을 모시는 표 2장은 지휘자님이 직접 사드리겠다고 하셨다.목사님께 그 소식을 전했더니 무척 기뻐하셨다. 목사님은 이번에는 빠리의 니코 호텔에 예약되어 있으니 나도 그 호텔에 방을 예약해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부푼 마음으로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렸다. (141페이지)목사님은 그렇게 매일같이 전화를 주셔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셨고, 나를 향한 사랑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한결같이 나를 곁에 두고 싶어 하셨다. 시간이 갈수록 그 분의 마음 속에 나를 더욱 깊이 간직하는 것 같았다.나는 그 넘치는 사랑에 황홀해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감사와 기쁨을 마음속에 품었다. 꿈만 같아서 울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 분의 사랑을 이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갖게 되었고 나도 온 정성을 다해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목사님은 빠리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를 하셨다. 그런데 간밤에 컴컴한 데서 잘못 움직이다가 조금 다쳤고, 배까지 아파 좀 불편하다고 하셨다. 나는 다른 교인들과 함께 공항에서 그 분을 기다리며, 내내 걱정이 되었다. 그때는 우리 민이도 담임 목사님의 아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어떻게 보면 내가 그 저녁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급히 녹두죽을 끓여 목사님이 계시는 호텔로 달려갔다.그렇게 우리는 다시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목사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 온 반지를 나에게 끼워주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나를 영의 아내로 삼고, 나도 그를 남편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나의 마지막 남자로 죽을 때까지 사랑해 달라는 기도와 천국에 갈 때까지 나를 인도하며 함게 하겠다고 하시는 간절하고도 눈물 나는 기도였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는 우리만의 비밀결혼식이었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둘만의 약속에 고개 숙여 응답했다.그리고 그 분은 나에게 용돈을 두둑하게 주며 외국에서 설교해서 받은 돈이니 내게 줘도 된다고 하셨다. 이제는 고생하지 말고 집안일 하는 사람도 쓰고, 새 옷도 사 입고, 좋은 음식도 사먹으라고 하셨다. 같이 살지는 못하지만 나의 남편으로 생각하고 항상 자기의 마음을 내 곁에 두겠으니 좀더 생활에 여유를 가지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나의 월급만큼의 금전적인 보탬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그 날은 내가 생전 처음으로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본 날이었다. 내 앞에 찾아온 이 꿈같은 현실 앞에서 무어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나에겐 과분한 행복이었는데,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감히 꿈도 꾸어볼 수 없었던 행복이었다.이튼날 목사님은 나와 함께 시간을 좀 더 가지려고 골프 약속도 취소하고 우리 집에서 내가 해드리는 점심을 드시기로 했다.-이하는 연재 6회로 계속됩니다.* 서민들이 허리띠 졸라매며 헌금한 돈으로 김장환 목사와 제주도로 골프나 다니고... 파리의 나비부인 연재 6회정X선지음(서울음대, 서울음대대학원 졸)도서출판 띠앗목사님과의 얘기치 않은 사랑목사님은 내가 아는 최고의 남자였다. 매우 박식했고 완벽했다.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면도 있었고 재미있었으며, 여자를 사랑해주는 매너가 최고의 수준인,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다. 능력 있고 멋진 남자이니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 이상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나의 모든 것을 사랑을 해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또 목사님은 소련에서 나를 위해 사왔다며 웃옷 안주머니에서 나무로 만든 소련의 목각 인형(마뜨료쉬까)을 꺼냈다.목사님과 장로님들은 사장님이 예약해 놓은 빠리 장에서의 저녁식사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사장님이 같이 가자고 말은 했지만 나를 별로 붙잡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약속이 있다며 니코 호텔에 예약되어 있던 목사님의 방으로 갔다.얼마 기다리지 않았는데 목사님이 오셨다. 그 분은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서둘러 돌아온 것 같았다. 이제 내일이면 목사님은 서울로 떠나야 했기에 그 밤이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이다.한국에서는 거의 교회에서 생활을 하며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만 다녀오신다고 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 분만의 비밀스런 휴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그 분은 이렇게 나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시며, 한달 후인 7월말 일주일 정도의 여름 휴가가 있으니 그 때 다시 만날 계획을 잡겠다고 하셨다.그 날은 호텔에서 밤을 지새지는 않았다. 민이가 집에서 혼자 자고 있었고, 아침에 등교하는 것을 도와줘야 했기 때문이다. 또 서로가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그 분 옆에서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새벽 4시경 집으로 돌아왔다.목사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매일같이 전화를 주셨다.그 분은 선교를 하고 아들과 손녀를 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일본에 다녀온다고 하셨다. 방학 때 일본에서 만나자고 하셨지만, 나는 그 분을 생각해서 그 쪽에는 얼씬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생각하더니 모나코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번에는 수행장로들과 함께 오면 불편하니 아들 내외와 함께 오겠다고 했다. 그러자고 했더니, 그 곳 H호텔에 예약했다면서 나도 그곳에 방을 예약하라고 하셨다.나는 그 분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 분이 남기고 간 잠옷을 입고 일어나는 아침, 내 손에 끼워준 반지, 그가 준 러시아 인형, 그 분이 지어준 나으이 새 이름, 매일같이 전화로 들을 수 있는 사랑이 담긴 그 분의 음성... 이 모든 것이 꿈 같았다. 어떤 때는 아침에 일어나 그를 생각하면서 벅찬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나는 7월말에 목사님을 만날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가 거의 다 되었을 때 그 분은 다시 약속 장소가 바뀌었단 걸 알려주었다. 5일 동안의 짧은 휴가기간에 이곳 저곳을 왔다갔다하면 시간 낭비라고 하면서 직접 빠리에 와 이틀 동안 나와 함께 보내고, 이틀은 오스트리아에서 음악 연수에 참석하는 사모님과 함께 지내기로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가기 전에 빠리에서 마지막 하룻밤을 나와 함께 보내겠다고 하면서 브리스톨 호텔에 예약되어 있으니 그 곳으로 다시 예약하라고 말씀 하셨다.
드디어 목사님이 오셨다.목사님은 며느리가 미인이라고 자랑하셨는데 정말로 아름다운 일본 미인이었다.다음날 목사님은 오스트리아로 떠나셨고, 나는 이틀 후 다시 돌아오실 목사님을 기다렸다. 곧 돌아오실 거라서 전화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 분은 그 곳에서 다시 시간을 내어 전화를 주셨다. 내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서 떨어져 있지만 오직 나만을 생각하고 있다며 따뜻한 음성으로 사랑을 표현하셨고, 나 역시 목사님으로 인해 너무 행복하니까 내 걱정 말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라고 말씀 드렸다. 그의 지극한 사랑에 흠뻑 빠져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오히려 아픔을 주지 않고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남자들이 능력이 있어 모두를 사랑해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를 소유하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문제를 만들어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목사님은 이틀 후 어김없이 내게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다시 빠리 리츠호텔에서 우리는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 그 분은 한 달만이라도 나와 함께 살아보고 싶다면서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슬퍼하셨다. 이렇게 나를 외로운 그늘 아래서만 만나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사랑해줄 수 없는 내가 불쌍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두고 떠나지만 항상 마음은 나와 함께 있으니 나는 혼자가 아니라면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하라고 덧붙이셨다.
곧 헤어져야 했기에 슬펐지만 나는 그 분의 사랑에 감격해서 밤새도록 그의 품에 안겨 울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위에 나오는 일본 며느리와는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을 함. 아래가 나비부인이 조다윗(조용기)목사님 품에 안겨 함께 밤을 보낸 파리 리츠호텔http://www.jpmoser.com/images/p-ritzparis.jpgHotel Ritz Paris * * * * *15 Place Vend?e 75401 Paris Cedex 01 - FranceThe Ritz is Europe's greatest hotel, an enduring symbol of elegance on on-e         of Paris's most beautiful and historic squares. C?ar Ritz,
파 리의 나비부인 연재 7회(현장사진첨부)정X선지음(서울음대, 서울음대대학원 졸)도서출판 띠앗목사님과의 얘기치 않은 사랑다음날 오후, 목사님이 우리 집으로 오셔서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 우리는 헤어졌다. 목사님은 8월 말경에 빠리를 거쳐 영국과 독일에서의 성회에 갈 때 또 들르겠다고 하며 떠났다.나는 민이와 함께 8월 초 빠리교회에서 세례를 바딕로 결정했다. 목사님의 연인으로서 당연히 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례식은 도빌 옆의 바닷가에서 진행되었다. 세례식에는 남불의 친구 제니 할머니가 와서 함께 해주었다. 제니도 나와 그 분의 관계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세례를 받고 목사님께 소식을 전했더니 무척 기뻐하셨다. 이제는 정말로 내가 새 사람으로 출발하고 태어났으니 성실히 믿음의 생활을 하라고 하셨다.어느 날 오후, 보통 그 시간엔 목사님이 전화를 하는 시간이 아니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도원에서 전화를 한다면서 내가 이에 세례를 받아 세 사람이 되었으니 기도원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일주일 정도 서울에 왔다 가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8월 20일경 자기가 빠리에 오는데, 돌아오는 길에 같이 오자고 하셨다.나 역시 그렇게 하고는 싶었지만 그 분과의 사랑이 탄로 날까 봐 서로를 위해서 그냥 이 곳에서 목사님을 기다리겠노라고 거절했다.그분은 몇 번이고 설득하시다가 결국은 실망한 목소리로 남편 말을 안 듣는구나 하면서 포기하셨다. 목사님이 금방 오실 텐데 괜히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전했다.그 후 그 분은 예정대로 20일경 빠리에 왔고, 이번에는 INTERCONTINENTAL 호텔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곤 하룻밤을 지내고 영국으로 떠나셨다.
사 장님은 이제 부르지 않아도 나타나는 나를 아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시기심에 불타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겉으로는 아직도 우리는 좋은 관계로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으나 서로 대하기가 무첫 힘들었다. 그러나 사장님과의 그런 관계와는 상관없이 나와 목사님의 사랑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어느 날, 그 권사님이 집으로 와서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있을 때 영국에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많이 보고 싶다고 하시며 독일에서 성회가 끝나는 날 나더러 뒤셀도르프로 오라고 하셨다. 권사님이 옆에 있어서 긴 얘기는 하지 못하고 대충 그렇게 하겠다고 만 대답하고 끊고는 잠시 후 동네의 여행사에 가서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목사님께는 전화를 걸어 그쪽 도착 시간을 알려 드렸다.그 곳의 니코 호텔에 도착해 목사님을 뵈었을 때 그 분은 피곤에 지쳐 있었다. 또 아들과 비서가 사업 때문에 어디로 돈을 받으러 갔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면서 불안해 하셨다.
그렇게 목사님과 하룻밤을 보낸 후, 나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빠리로 돌아왔다. 그 분은 오후에 아들과 함께 빠리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그런데 빠리에 도착해 전화를 하겠다던 시간이 되어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다시 빠리의 INTERCONTINENTAL 호텔이라고 하시면서 그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공항에서 아들의 짐을 도난 당해 늦었다며, 피곤하고 기분도 좋지 않다고 하셨다.이튿날에는 빠리 교회에서 목사님의 특별집회 설교가 있었다. 나는 그때 특송을 부르기도 했다.그리고 다음날 목사님은 앞으로의 프랑스 선교를 위해 샹제리제 쪽으로 사무실을 얻었으며, 아들이 독일에 자동차를 주문했다고도 했다.천천히 호텔로 돌아왔을 때 목사님이 예상보다 일찍 전화를 하셨다. 나와 함께 있고 싶어 모든 것을 제쳐놓고 잠깐 사무실만 보고 일행들과 헤어져 호텔로 급히 와서 나를 찾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곤 급히 내 방으로 오셨다. 그 때까지 아직 점심도 안 하신 상태였다. 피곤하고 지친 듯 힘들어하셨다.그러면서 자유로운 나라에서 자유롭게 예술을 하는 나를 좀 염려하며 남자들의 식사 초대 같은 것은 피해야 한다고 하셨다. 덧붙여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도 했다. 나도 목사님께 나를 버리지 말라고 말했더니,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많은 성도들을 위해서 너를 버릴 수 있지"라며 무거운 대답을 하셨다.이른 새벽, 목사님은 자신의 겉옷과 속옷 몇 가지를 주시며 이제 오랫동안 만날 수 없을 테니 자기가 옆에 있는 것처럼 늘 가지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다음날 목사님은 서울에 잘 도착했다며 연락을 했다. 내가 드린 약 때문에 피로가 많이 풀렸다고도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는 날짜만 세면서 빨리 12월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 시간이 못 견디게 긴 것 같았다.얼마 후 목사님은 홍콩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주셨는데, 또 전화를 하겠다고 하고는 마를 며칠 기다리게 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니, 그 분은 사모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전화할 수가 없었다며 야단치는 듯한 음성으로 내가 기다리고 있으면 부담이 되니 기다리지 말라고 하셨다.하루는 홍콩 시간으로 한밤중인데 전화를 하셨다. 나는 반가이 이 시간에 어떻게 전화를 주셨냐고 했더니, "네 생각이 나서 이렇게 전화를 했지" 라며 짧게 대답하셨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한밤중이라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뭔가 굉장히 괴로운 듯 그 분의 목소리가 우울하게 들렸다.슬픈 아리아10월이 되었다. 사장님이 빠리에 와서 나를 만나고 있었으면서도 다른 성도들에게 내 안부를 물으면서 잘 있냐고 물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또 어느 날은 그 집 식당에서 일하던 집사가 우리 집에 와서 사장님이 목사님과 나와의 관계를 이상히 보고 끝까지 추적해서 캐내겠다고 하면서 이를 갈고 있다고 전해주었다.그 집사는 목사님은 미국에서도 바람둥이로 소문이 났다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다.(157페이지)-이하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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